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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페르시아 역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기원전 330년 – 기원전 250년)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는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에 전 그리스를 통일하고 동방 원정에 나섰습니다. 그의 원대한 꿈은 바로 강대국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는 것이었죠. 알렉산드로스는 10여 년에 걸친 정복 전쟁 끝에 페르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전역을 석권하는데 성공했어요. 세계사에 길이 남을 천재적인 군주,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젊은 마케도니아 왕의 등장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56년경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총명하고 야심만만한 청년이었던 그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수학했죠. 20세가 되던 기원전 336년, 알렉산드로스는 암살당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그는 곧바로 아버지가 계획했던 페르시아 원정을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페르시아를 향한 원정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군을 이끌고 페르시아의 영토인 소아시아 서부 해안에 상륙했어요. 그리고 그라니쿠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고 소아시아 내륙으로 진격했죠. 이듬해인 기원전 333년에는 이소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이끄는 대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알렉산더는 시리아와 페니키아, 팔레스타인을 연이어 점령한 뒤 기원전 332년 이집트로 진군했어요.

이집트 정복과 알렉산드리아 건설

이집트에서 알렉산더는 파라오로 추대되었고,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죠.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요충지에 세워진 이 도시는 훗날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최후의 결전 아르벨라 전투

알렉산더는 기원전 331년 두 번째 페르시아 원정길에 올랐어요. 티그리스강을 건넌 그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있는 아르벨라 평원에서 다리우스의 군대와 맞붙었죠.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알렉산더군은 기동력과 진형, 전술로 압도하며 페르시아군을 대파했습니다. 패배한 다리우스는 페르세폴리스로 패주했고, 알렉산더는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를 연이어 함락했어요. 페르세폴리스 궁전에 방화하여 페르시아의 패망을 상징적으로 과시하기도 했죠.

알렉산드로스의 몰락

동방으로의 원정

승승장구하던 알렉산더는 기원전 329년 동방 원정에 나섰어요. 그는 파르티아와 박트리아를 정복한 뒤 기원전 327년 인더스강을 건너 펀잡 지방까지 진군했죠. 포로스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더는 인도 내륙을 향해 계속 나아가려 했으나, 부하들의 반발로 진군을 멈추고 귀환을 결정합니다.

제국의 위기와 알렉산더의 죽음

동방 원정을 마치고 바빌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제국을 재편하는 한편, 페르시아풍의 의상과 궁정 예법을 도입하는 등 동서융합 정책을 폈어요. 그러나 그의 정책은 마케도니아인들의 반발을 샀고, 각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죠. 원정으로 지친 그의 건강도 악화일로였습니다. 결국 기원전 323년 6월, 알렉산더는 바빌론에서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병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영토의 분할과 후계자 전쟁

알렉산더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죽자, 제국은 혼란에 빠졌어요. 그의 장군들은 영토를 네 개로 분할해 통치하기로 합의했죠.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곧 이른바 후계자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40여 년간 이어진 치열한 각축전 끝에 결국 제국은 온전히 유지되지 못하고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 등으로 분열되고 말았어요.

동서 문화의 융합 헬레니즘

헬레니즘 문화의 탄생

알렉산더 제국의 분열로 탄생한 왕조들, 이른바 헬레니즘 왕조들은 알렉산더의 동서 융합 정책을 계승했어요.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문화, 헬레니즘 문화가 발흥했죠. 이는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걸쳐 나타났는데요. 특히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서 서양 고전 문화의 보고 구실을 했어요.

헬레니즘 예술의 새 경향

헬레니즘 시대에는 예술의 새로운 경향이 두드러졌어요. 기념비적 조각상이 유행했는데, 로도스의 거상이 대표적이죠. 또한 개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는 경향도 강해졌어요. 라오콘 군상이나 밀로의 비너스상 등에서 볼 수 있듯, 인체의 비례와 균형미를 추구하면서도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발전

헬레니즘 시대에는 철학도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등이 등장했죠. 스토아학파는 금욕적이고 엄격한 삶을 강조하면서 세계시민주의를 설파했고,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이상으로 내세웠어요. 그리스 철학은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대중화되고 체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역사적 의의와 영향

세계사의 획을 그은 인물

천재적 군주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은 고대 서양사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어요. 그는 그리스 세계를 통일하고 동방을 정복함으로써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죠. 특히 동서 문화의 융합을 촉발한 장본인이었던 만큼, 그의 업적은 인류 문명사적 차원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영웅시와 알렉산더 로망스

알렉산더 대왕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후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중세 유럽에서는 알렉산더를 주인공으로 한 영웅시가 널리 읽혔고, 동양에서는 『알렉산더 로망스』라는 전기소설이 퍼져나갔죠. 알렉산더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삶을 산 영웅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습니다.

헬레니즘 문명의 꽃,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더가 세운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문화 수도였어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수십만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고, 유명 학자들이 모여들어 연구에 몰두했죠. 특히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같은 걸출한 수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과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답니다. 문학에서도 테오크리토스를 비롯한 시인들이 나와 목가시를 꽃피웠고요.

세계 종교의 요람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철학의 본산이기도 했어요. 유대인 학자 필론은 헬레니즘 철학으로 구약성서를 해석하는 알레고리 해석법을 창시했죠. 또 초기 기독교 교부인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도 여기서 활동하면서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융합시키고자 했어요. 나아가 알렉산드리아는 마니교, 영지주의 등 다양한 종교사상이 발흥한 곳이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알렉산드리아는 동서 종교의 요람이자 전파지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듯 비록 알렉산더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알렉산드로스와 헬레니즘은 인류 문명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어요. 그는 살아생전 "내 무덤 앞에는 두 개의 세계, 아시아와 유럽이 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천재적이고 파격적인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의 꿈과 정복의 여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