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은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조의 부침을 겪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멸망한 아케메네스 왕조, 파르티아의 지배를 받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이어, 페르시아인들이 다시 새로운 왕조를 세우게 되는데요. 바로 기원후 3세기에 등장한 사산 왕조입니다. 400여 년 넘게 페르시아를 통치했던 사산 왕조 시대, 그 발자취를 좇아가 보도록 하죠.
사산 왕조의 흥기
아르다시르 1세와 제국의 건설
사산 왕조의 창건자는 파르스 지방의 왕 아르다시르 1세였습니다. 그는 기원후 226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마지막 군주 아르타바누스 5세를 몰아내고 제국의 왕위에 올랐어요. 아르다시르는 구 아케메네스 왕조의 전통을 부활시켜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갖추었죠. 또한 정통 페르시아 문화를 부흥시키고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민족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도 힘썼습니다.
로마와의 대결 구도 형성
아르다시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장악하며 제국의 영역을 확장했어요. 이로 인해 로마 제국과 사산 제국 간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죠. 양국은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아르메니아를 두고 각축을 벌이게 됩니다.
샤푸르 1세의 攻勢
아르다시르의 뒤를 이은 샤푸르 1세는 본격적으로 로마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하는 파격을 보이며 대승을 거뒀어요. 시리아와 카파도키아, 소아시아 서부까지 진출한 샤푸르 1세.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판도를 크게 넓혔죠.
제국의 전성기
샤푸르 2세와 콘스탄티우스 2세의 각축
콘스탄티누스 대제 사후 로마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었고, 동로마의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는 사산의 샤푸르 2세와 장기전을 벌였어요. 350년에서 360년에 걸친 전쟁은 큰 승부 없이 끝났지만, 양국 간의 대결 구도는 점점 첨예화되었습니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원정과 전사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자 율리아누스가 동로마의 황제가 되었어요. 이교도였던 그는 사산을 토벌하고자 대원정을 감행했죠. 363년, 군사 6만여 명을 이끌고 출정한 율리아누스는 샤푸르 2세의 스코치드 어스 전술에 당해 큰 피해를 입었어요. 퇴각을 결정한 율리아누스는 귀환길에 전사하고 말았죠.
이즈디게르드 1세의 치세
5세기 초반, 이즈디게르드 1세가 사산 제국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와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통치를 펼쳤어요. 특히 종교에 관대한 정책을 펴 제국 내 기독교도들을 포용하고자 했죠. 학문을 장려하고 문화 발전에 힘썼던 이즈디게르드 1세 치하에서 사산 제국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학술의 발전
이즈디게르드 1세와 그의 후계자들은 학문 발전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학자들을 후원했어요. 특히 의학과 천문학, 수학 분야에서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었죠. 이들은 페르시아의 고유한 학술 전통과 서역에서 유입된 그리스 학문을 접목시켜 독자적인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제국의 쇠퇴
코스로에스 1세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전쟁
6세기 중반, 사산의 코스로에스 1세와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간에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어요. 532년에 맺은 '영원한 평화' 조약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곧바로 전쟁을 재개했죠. 20여 년간 계속된 이 전쟁으로 사산 제국은 큰 피해를 입었어요. 제국의 국력은 크게 떨어졌고, 왕권 또한 약화되기 시작했죠.
코스로에스 2세의 일시적 영토 확장
코스로에스 1세의 증손자 코스로에스 2세는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통해 제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어요. 610년, 그는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예루살렘까지 함락시켰죠. 그러나 코스로에스 2세의 정복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동로마의 황제 헤라클레이오스가 반격에 나서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죠.
아랍의 침공과 제국의 멸망
7세기에 들어서자 아라비아에서 이슬람 제국이 급부상하기 시작했어요. 칼리프 우마르는 640년 메소포타미아를 공격해 크테시폰을 함락시켰죠. 642년에는 니하반드 전투에서 사산군을 대파하고 페르시아 깊숙이 진격했어요. 651년, 마지막 군주 예즈디게르드 3세가 피살되면서 사산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산 제국의 유산
조로아스터교의 변화와 발전
사산 제국 시대, 조로아스터교는 국교로서 중요한 위상을 지녔어요. 교리와 의례가 체계화되었고, 교단 조직도 정비되었죠. 사제들은 귀족 계층을 형성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로아스터교는 배타성을 띠며 다른 종교를 탄압하기도 했어요. 특히 마니교도들은 박해를 받았죠.
조로아스터교 聖典의 편찬
사산 시대에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이 집대성되었어요. 아베스타라 불리는 이 성전은 아베스타어로 기록되었는데요. 제사 의식에 쓰이는 가타, 신화를 담은 야스나, 율법서인 벤디다드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죠.
페르시아 문학과 예술의 꽃
사산 제국 시대에는 페르시아 문학과 예술도 크게 발전했어요.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쿠슈나메』가 탄생한 것도 이때였죠. 또한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 아래 화려한 궁정 예술이 꽃피웠어요. 페르세폴리스의 궁전에서 발견된 부조들은 사산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죠.
페르시아 양식의 건축
사산 왕조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을 많이 남겼는데요. 아치나 둥근 천장의 사용이 특징적이에요. 마스지드-이 솔레이만이라는 유적지의 불temples을 보면 페르시아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죠.
역사적 의의와 영향
동서 문명의 교차로
사산 제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교역을 활발히 전개했어요. 서역에서 불교와 경교 등이 유입되었고, 페르시아의 문물이 중국에 전해지기도 했죠. 특히 사산의 은그릇이나 유리잔, 보석 세공품 등은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는 문자 그대로 동서 문명의 가교 역할을 했던 거죠.
사산의 멸망과 이슬람 세계의 확장
사산 제국의 멸망은 이슬람 세계의 팽창을 가속화했어요.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가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가 펼쳐졌죠. 한편 사산 페르시아의 문화 유산은 이슬람 세계에 흡수되어 면면히 이어졌어요. 예를 들어 페르시아의 행정 조직이나 관료제는 이슬람 제국에 계승되었죠.
이란 문화의 정수로서의 가치
사산 제국은 오늘날 이란인들에게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고 있어요. 페르시아의 전통과 문화가 꽃피웠던 사산 시대는 이란사의 황금기로 기억되죠. 사산 예술의 걸작들은 테헤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페르세폴리스의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400여 년간 존속했던 사산 왕조. 로마와의 대결, 화려한 문화, 그리고 이슬람 세력에 의한 멸망. 파란만장했던 사산 제국의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아요. 번영과 혼란, 그 굴곡의 역사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져 온 페르시아인들의 문화유산. 그 속에서 우리는 한 민족의 자존과 긍지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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