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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수메르 역사 우바이드기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는데요. 그 첫 시기를 우리는 우바이드기라고 부릅니다. 우바이드기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기원전 4000년경까지를 아우르는 시기로, 수메르 문명의 토대가 마련된 때라고 할 수 있죠. 우바이드기에는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을까요? 수메르 문명의 출현을 예고한 이 시기의 모습을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바이드기의 시대 구분

우바이드기의 명칭 유래

우바이드기라는 명칭은 우바이드라는 유적지에서 유래했어요. 우바이드는 이라크 남부에 위치한 고대 마을인데요. 1920년대 레오날드 울리가 이곳을 발굴하면서 우바이드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죠. 울리는 우바이드 유적지에서 발견된 토기와 주거지 등을 근거로 우바이드 문화를 정의내렸답니다.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는 우바이드기

우바이드기는 크게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뉩니다. 초기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기원전 4500년경까지, 중기는 기원전 4500년경부터 기원전 4000년경까지, 후기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우루크 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3500년경까지를 일컫어요. 초기부터 후기로 갈수록 문화의 내용이 더 풍부해지고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인답니다.

에리두 유적으로 본 우바이드 문화

이라크 남부에 있는 에리두 유적은 우바이드 문화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곳이에요. 고고학자 콘웨이 로이드가 발굴한 에리두에는 기원전 4800년경부터 기원전 4000년경까지 조성된 신전 18기가 남아 있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신전의 규모가 커지고 양식이 화려해지는 걸 통해, 우리는 우바이드 문화가 발전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답니다.

우바이드기의 사회문화적 특징

농경의 발달과 정착 생활

우바이드기에 접어들면서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서는 농경이 시작되었어요. 토질이 비옥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이 지역에서 사람들은 밀과 보리를 재배하기 시작했죠. 농사를 지으려면 한 곳에 정착해야 했기에, 우바이드기부터는 촌락이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초기에는 인구 100명 내외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마을의 규모가 커져갔답니다.

가축의 길들이기

우바이드기에는 가축을 길들이는 축산도 시작되었어요. 양, 염소, 소, 돼지 등을 기르면서 식량과 가죽, 뼈 등 다양한 자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죠. 농경과 목축이 함께 이뤄지면서 우바이드기 사회는 한층 안정된 물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답니다.

수공업의 발달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면서 우바이드기에는 수공업도 발전하기 시작했어요. 곡식을 갈아 가루를 내는 제분업, 양털로 옷감을 짜는 방직업 등이 생겨났죠. 도자기를 만드는 제陶업도 발달했는데요. 우바이드 시대의 도기는 녹회색을 띠며 기하학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게 특징이에요.

전문 기술자의 출현

수공업이 발달하면서 전문 기술자 집단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농사나 목축에 종사하지 않고 수공업 생산에만 전념했죠. 마을에서 생산된 잉여 산물로 기술자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 거예요. 전문 장인의 등장은 우바이드 사회가 한층 분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답니다.

계급 사회의 출현

우바이드 후기에 이르면 마을 사이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해요. 일부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많은 재화를 축적하고 권력을 갖게 되었죠. 마을 안에서도 富의 편중이 나타나면서 계급이 나뉘기 시작했어요. 에리두 신전 주변에서 발견된 화려한 장신구와 무기들은 支配층의 존재를 뒷받침하죠.

성층 구조의 형성

우바이드 후기에는 마을이 계층화되면서 우두머리가 출현하게 됩니다. 군장이나 제사장 계급이 마을의 정치, 종교, 경제를 주도하게 된 거예요. 나아가 촌락 간에도 위계질서가 만들어지는데요. 강력한 마을이 약소 마을을 지배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는 도시국가 체제의 출현을 예고하는 변화였어요.

종교의 발달

신전의 건립

우바이드기에는 마을마다 신전이 건립되기 시작했어요. 에리두에서 발견된 18기의 신전은 이를 잘 보여주죠. 초기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전은 웅장해지고 화려해졌어요. 신전 건립은 집단적 노동력의 동원을 필요로 했기에, 마을 사회가 어느 정도 조직화된 상태였음을 방증하는 거랍니다.

에리두 신전과 수호신

에리두에 건립된 신전들은 모두 수호신 엔키를 위한 것이었어요. 엔키는 지혜와 기술, 농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대洪水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했죠. 농경 사회였던 우바이드 시대 사람들에게 엔키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겠죠? 에리두가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성소로 여겨진 것도 엔키 신앙 때문이었어요.

제의의 발달

신전 건립과 함께 우바이드기에는 제의도 발달하기 시작했어요. 신전에서는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행하는 제사장이 등장했죠. 이들은 농경과 풍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을 주관했을 거예요. 복잡한 의례의 등장은 제사장 계급의 전문화를 부추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답니다.

여신 신앙의 맹아

우바이드 시대 신전 유적에서는 출산과 수유를 묘사한 여신상들이 많이 발견되곤 해요. 당시에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여신 숭배가 성행했던 것 같아요. 모계 중심의 씨족 사회였던 우바이드 시대의 특성이 반영된 거라 할 수 있겠죠.

예술의 맹아

토기의 발달

우바이드 시대의 예술하면 단연 토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우바이드 토기는 녹회색 바탕에 기하학적 문양을 그려 넣은 게 특징이에요. 물고기 문양이 많이 등장하는데,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반영한 걸로 보입니다. 우바이드 후기로 가면서는 토기에 채색을 하거나 각종 무늬를 새기는 기법이 발달하기도 했죠.

에리두 토기의 예술성

에리두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정교한 기법과 세련된 조형미로 주목받아요. 물고기 문양을 섬세하게 음각하거나, 기하학 무늬를 규칙적으로 배치한 모습이 인상적이죠. 에리두 토기에서는 당시 장인들의 높은 기량과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어요.

조각의 출현

토기와 함께 조각도 우바이드 시대 예술의 한 축을 담당했어요. 신전 주변에서는 여신상, 동물상, 제의용 석판 등 다양한 조각품이 발견되곤 합니다.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화된 조형이 우바이드 조각의 특징인데요. 당시 사람들의 심성을 투박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해 낸 것 같아요.

모자이크 장식의 맹아

우바이드 신전 벽면에는 모자이크 기법의 萌芽를 찾아볼 수 있어요. 색색의 점토로 기하학 무늬를 짜 맞추듯 장식한 건데요. 비록 단순한 수준이지만, 후대 메소포타미아 건축의 모자이크 장식으로 이어지는 효시가 되었답니다.

우바이드 문화의 영향

우루크 문화로의 계승

우바이드기가 끝나갈 무렵인 기원전 4000년경부터는 우루크 문화가 꽃피우기 시작했어요. 우루크 시대에는 우바이드기에 싹텄던 문명의 요소들이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신전은 더 크고 웅장해졌고, 문자가 발명되었으며, 도시국가들이 출현했죠. 우루크 문화는 우바이드 문화를 계승하면서 수메르 문명의 전성기를 열어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유럽으로 전파된 우바이드 문화

우바이드 문화는 메소포타미아에 그치지 않고 멀리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우바이드 토기와 유사한 유물들이 그리스는 물론 발칸반도에서도 발견되곤 하죠. 물론 직접적인 교류의 흔적이라기보다는, 문화 전파에 의한 간접적인 영향으로 봐야겠지만요. 우바이드 문화가 지중해를 건너 멀리 퍼져나갔음을 방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날 이라크 남부의 문화적 연원

우바이드 문화는 모든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원형이 되었어요. 수메르,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문명 모두 우바이드 문화의 영향 아래 태동했죠. 그런 의미에서 우바이드 문화는 오늘날 이라크 문화, 특히 남부 지역 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어요. 이라크 사람들이 우바이드 시대의 유적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답니다.

기원전 5000년경, 수메르인들의 먼 조상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강물이 선사해 준 지혜로, 그들은 농사를 지었고 집단 생활을 시작했죠. 신전을 세우고 예술을 꽃피우며 문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