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2세기말, 북동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야만족에 의해 찬란했던 아카드 제국이 멸망하고 맙니다. 바로 산악 유목민 구티족의 침입이었죠. 이들은 약 100년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하며 수메르와 아카드 땅을 초토화했습니다. 문명의 중심지였던 도시들은 폐허가 되고, 고도로 체계화되었던 행정과 경제 체제도 붕괴되고 말았어요. 수메르 문명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구티족 지배기, 그 암흑의 시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할까요?
구티족의 침입과 아카드 멸망
갑작스러운 야만족의 등장
아카드 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기원전 22세기말, 뜻밖의 침입자가 나타났어요. 자그로스 산맥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구티족이 그 주인공이었죠. 이들은 북동쪽 국경을 돌파해 아카드 영토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잘 조직된 군대도, 계획적인 정복 의도도 없었어요. 약탈이 주된 목적인 거칠고 난폭한 집단이었죠.
최후의 아카드 왕 샤르칼리샤리의 저항
구티족의 침입에 맞선 건 아카드의 마지막 왕 샤르칼리샤리였어요. 그는 야만족의 대규모 침공에 단호히 맞서 싸웠죠. 하지만 유목민 특유의 신속한 기동력을 앞세운 구티족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결국 샤르칼리샤리는 쓰러졌고, 그가 지키려 한 아카드의 영광도 끝내 무너지고 말았어요.
아카드의 멸망과 구티족의 점령
샤르칼리샤리의 패배로 아카드 제국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구티족은 수도 아카드를 함락하고 왕궁에 불을 질렀어요. 저들에겐 문명이고 뭐고 없었던 거죠. 오로지 약탈과 살육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아카드 제국의 붕괴는 수메르 땅에도 엄청난 혼란을 몰고 왔답니다. 도시들은 구티족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정치와 경제는 마비되었죠.
아카드 유민의 도주와 문명의 단절
구티족의 만행을 피해 수많은 아 카드인들이 고향을 등졌어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또 남쪽으로 내려간 거죠. 이들 피난민 행렬의 이동은 한동안 메소포타미아 지도를 새로 그리게 되는데요. 아카드 인구가 급감하면서 고도로 발달했던 문명이 단절되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구티족의 통치와 약탈
'산의 민족' 구티족
자그로스 산맥에 거점을 둔 구티족은 유목과 약탈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야만족이었어요. 이들에겐 '왕'다운 수장도 없었고, 부족장들이 각자도생 하는 형국이었죠. 수메르인들에겐 '유물므'라 불리던 이 오합지졸 집단이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땅을 집어삼킨 것입니다.
구티족 지배의 폭력성
구티족의 통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시기였어요. 폭력과 약탈이 난무했으니까요. 그들은 수메르의 도시와 신전, 궁전을 마구잡이로 털어갔어요. 값비싼 보물이나 곡식은 물론이고, 가축이나 장신구 하나까지도 약탈의 대상이 되었죠. 농경과 상업, 수공업 같은 도시의 산업 기반도 모조리 파괴되었답니다.
노예사냥과 인구 감소
구티족의 약탈은 사람에게도 미쳤어요. 그들은 무차별적인 인육 사냥에 나섰죠. 수많은 수메르인들이 구티족에 끌려가 노예로 팔려나갔어요. 노동력 감소는 농업 생산력을 크게 떨어뜨렸고, 기근과 흉년으로 이어졌죠. 구티족 치하에서 수메르의 인구는 급감했다고 합니다.
굴욕적인 공물 강요
구티족은 약탈로 버티기 힘들어지자 공물을 받아내기 시작했어요. 곡식이나 금은보화, 가축 따위를 정기적으로 바치라고 강요한 거죠. 이는 일종의 조공 체계라고 할 수 있었어요. 수메르 도시국가들로선 수모 그 자체였겠지만 생존을 위해 굴욕적인 공물 바치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문명의 단절과 암흑기
구티족 치하의 수메르는 암흑기 그 자체였어요. 문명의 요람이었던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었고, 경제와 문화는 모조리 파탄 났죠. 수메르의 문자 기록도 이 시기에 단절되는데요. 그만큼 문명의 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거예요. 학문과 예술도 후퇴를 면치 못했답니다. 100년이 넘는 구티족 지배 기간은 수메르 역사에서 최악의 암흑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약탈과 파괴
구티족은 수메르의 문화재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약탈해 갔어요. 도시를 지배하는 수장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부장품을 털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죠. 아카드 시대의 걸작 조각들도 상당수 약탈되거나 부서졌다고 해요. 수메르 문명의 정수라 할 만한 유산들이 구티족에 의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셈이죠.
수메르 도시국가의 고군분투
구티족에 대한 저항
구티족의 횡포에 맞선 수메르 도시국가들도 있었어요. 우루크나 라가시 같은 도시에서 구티족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던 거죠. 특히 우루크의 군주 우투헤갈은 구티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진 저항 세력으로는 구티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어요.
잠시 들썩인 우르의 반란
기원전 21세기 초, 우르에서도 반란이 일어났어요. 우르남무라는 인물이 주동이 되어 구티족에 대항한 거죠. 우르남무는 일시적으로 우르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내 구티족의 반격을 받고 좌절하고 맙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대표적 도시국가로 성장할 우르도 당시로선 구티족을 감당하긴 벅찼던 모양이에요.
구디아와 라가시의 노력
라가시의 군주 구디아는 구티족 지배기에 홀로 선방을 보인 인물이에요. 그는 외교적 수완으로 구티족과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도시를 일으켜 세웠죠. 성채를 축조하고 관개 시설을 정비하는 등 라가시 재건에 힘썼어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냈는데요. 가령 구디아 석상은 그가 남긴 대표적 걸작으로 꼽히죠.
신전 재건과 제의 부활
구디아는 또 구티족에 의해 파괴된 신전을 재건하는 사업도 벌였어요. 도시의 수호신을 모시는 제의를 부활시키려 한 것인데요. 신전 건축을 통해 신들의 가호를 구하고, 도시민의 결속을 다지려 한 것 같아요. 수메르의 종교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이기도 했겠죠.
도시국가 시대의 종언
구티족 치하에서 고군분투하던 수메르 도시국가들은 어느 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오랜 항쟁에도 구티족의 약탈은 계속되었고, 수메르의 정치, 경제, 문화의 기반은 결국 붕괴되고 말았어요. 이로써 수메르를 지배하던 도시국가 체제는 종언을 고하게 되는데요. 암흑기를 거쳐 훗날 우르 제3왕조 시대 잠시 부활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불꽃이었죠.
군사적 패권 체제의 몰락
아카드 제국 이전 수메르에는 군사적 패권을 다투는 도시국가들이 각축을 벌였어요. 하지만 구티족의 파괴적 점령은 이런 군사적 패권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고 말았죠. 영토와 자원을 빼앗긴 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처지가 된 거예요. 아카드에 이은 구티족의 충격으로 수메르의 군사적 패권 체제는 영원히 몰락하고 맙니다.
구티족 퇴출과 수메르의 잠시 부활
시루름의 통일과 구티족 격퇴
기원전 21세기말, 아카드 북부 도시 아완의 왕자 시루름이 등장합니다. 시루름은 아완을 거점 삼아 주변 도시들을 복속시켜 나갔어요. 그리고 마침내 반격의 때를 노려 구티족을 격퇴하고 자그로스 산맥 너머로 몰아냈죠. 메소포타미아를 질곡에서 구해낸 영웅으로서 시루름의 이름은 후대에도 길이 칭송되었답니다.
신왕국 시대의 개막
시루름은 구티족을 물리친 뒤 우르에 새로운 왕조를 세웠어요. 훗날 우르남무로 추대되는 인물이기도 한 시루름은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재통일했죠.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는 신전 중심의 국가 체제, 이른바 신왕국 시대가 열린 겁니다. 수메르 문명이 암흑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것 같았어요.
우트헤갈의 개혁과 시늉기의 등장
구티족의 철수 이후 잠깐이나마 수메르는 평화를 되찾았죠. 특히 우르 제3왕조를 세운 시늉기 시대에는 각 분야에서 개혁의 성과도 나타났어요. 시늉기의 아버지 우트헤갈은 토지 정책을 정비하고 조세 제도를 개선하는 등 국가 기반을 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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