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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아카드 제국 역사

기원전 24세기,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는 새로운 강자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목민 출신으로 세미트어를 쓰는 아카드인들이었죠. 우수한 군사력과 조직력을 앞세운 아카드인들은 수메르 도시국가들을 하나둘 정복해 나갔고, 마침내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릅니다. 사르곤 대왕으로 대표되는 아카드 왕조는 근 200년간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며 인류 역사상 제국주의의 효시가 되었는데요. 오늘은 '제국의 여명'이라 불리는 아카드 제국의 역사를 좇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르곤 대왕과 제국의 건설

전설적 영웅 사르곤의 등장

아카드 제국의 건국자는 바로 사르곤이에요. 그는 전설적인 영웅으로 기억되는데요. 어머니의 몸종이었던 사르곤은 어릴 때 버려졌지만, 운명의 도움으로 키시 왕의 측근이 되었다고 해요. 훗날 반란을 일으켜 키시를 장악한 그는 오늘날의 이라크 북부에 아카드라는 도시를 세우고 새 왕조를 열게 됩니다.

정복 전쟁과 세력 확장

사르곤은 전례 없는 정복 활동을 벌이며 판도를 넓혀갔어요. 먼저 남쪽의 수메르 도시국가들을 공격해 우르, 라가시 등을 함락시켰죠. 이어서 북부 아시리아까지 진격한 그는 페르시아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어요.

최초의 중앙집권 제국

정복지를 다스리기 위해 사르곤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도입했어요. 정복한 도시에는 총독을 파견해 직접 통치하게 했죠. 또 정복지의 젊은이들을 징집해 중앙의 군대로 편입시켰어요. 피지배 민족을 제국의 지배 체제 속으로 끌어들인 거예요.

제국주의 통치의 효시

사르곤의 정복 방식은 제국주의 통치의 효시가 되었어요. 피정복자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공물을 받아내는 한편, 그들의 노동력을 수탈해 부를 축적하는 패턴 말이죠. 속국의 지배층을 회유하거나 인질로 잡아두는 방식도 활용되었답니다. 이는 훗날 신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 등 대제국의 표준적 통치술이 되었어요.

리무쉬와 마니쉬투수

사르곤 사후 아들 리무쉬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 역시 정복 군주의 면모를 보였어요. 그는 반란을 일으킨 수메르 도시들을 진압하고 엘람 지역을 정벌했죠. 또한 휴전 중이던 레바논의 도시들을 기습해 무력으로 굴복시키기도 했답니다.

마니쉬투수 때의 내란

리무쉬의 뒤를 이은 마니쉬투수 때 제국은 최대 영역을 확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등장은 내란의 서막이기도 했어요. 리무쉬의 아들로 알려진 마니쉬투수는 숙부인 리무쉬를 암살하고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이죠. 이를 계기로 왕실 내 권력 다툼이 본격화되고, 속국들의 반란도 끊이지 않았다고 해요.

나람 씬과 제국의 전성기

아카드의 전성기를 연 나람 씬

마니쉬투수의 손자 나람 씬은 아카드의 전성기를 연 영웅적 군주로 기억돼요. 즉위 초 반란으로 위태로웠던 제국을 다시 안정시킨 인물이죠. 그는 광휘한 원정을 통해 제국의 위용을 떨치며 메소포타미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렸어요.

4방 원정과 제국의 팽창

나람 씬은 남쪽으로는 페르시아만까지, 북쪽으로는 아나톨리아 지역까지 진출했어요. 그 과정에서 항구 도시 마간을 함락하고 수메르의 반란을 진압하는가 하면, 북서쪽으로 쳐들어가 아시리아의 도전도 봉쇄했죠. 그야말로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간 거예요.

절대 군주의 면모

"4방위의 왕"이라 칭한 나람 씬은 명실상부한 절대 군주였어요. 정복지에 아카드식 통치 체제를 강제하고, 막대한 조공을 걷어 갔죠. 때로는 신격화된 절대자로 군림하기도 했는데요. 어느 비문에선 스스로를 '우주의 왕'으로 지칭한 대목도 나와요.

위대한 개혁군주로서의 평가

나람 씬은 정복 활동과 함께 제국 통치 체제 정비에도 힘썼어요. 지방에 파견한 총독들을 교체하면서 부정부패를 척결했고, 속국에 군사 주둔지를 늘려 통제력을 강화했죠. 또 제국 각지를 연결하는 도로망을 구축하고 상거래도 장려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위대한 개혁군주로 평가받기도 해요.

어두운 그림자

나람 씬의 정복과 개혁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어요. 그의 통치는 피정복민에겐 가혹한 착취와 억압의 시간이었거든요. 징발과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원성을 쏟아냈던 거죠. 나람 씬의 위업 이면에는 수많은 약소국의 희생이 숨어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마간 함락의 개과천선설

나람 씬 집권 초기 마간 함락은 흥미로운 일화를 남겼어요. 나람 씬은 마간 정벌 후 도시의 수호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렀는데, 이때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너의 죄를 용서한다"는 신의 말에 감명받은 나람 씬은 폭정을 멈추고 선정을 펼쳤다는 거예요. 개과천선설의 원형이 되는 일화랍니다.

구티족의 침입과 멸망

구티족의 침공

나람 씬 사후 아카드 제국은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북동부 자그로스 산맥에서 기습한 구티족이 그 결정타였어요. 기마 유목민인 구티족은 신속한 기동력을 앞세워 아카드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수도 아카드까지 함락시켰죠.

샤르칼리샤리의 분전

구티족의 공세에 맞선 건 아카드의 마지막 왕 샤르칼리샤리였어요. 수메르 속국의 지원을 받은 그는 악전고투 끝에 구티족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죠.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반격에 그쳤어요. 왕권이 약화된 틈을 타 반란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구티족도 재차 쳐들어왔거든요.

제국의 멸망

결국 구티족의 맹공을 이겨내지 못한 아카드는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나람 씬의 증손자인 마지막 왕 슈두르울은 구티족에 잡혀가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로써 사르곤이 세운 아카드 왕조는 멸망하고, 근 2세기에 걸친 제국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죠.

수메르 르네상스의 맹아

사실 구티족의 침입은 아카드 제국 못지않게 수메르에도 큰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이를 계기로 수메르 도시국가들이 잠깐이나마 독립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른바 수메르 르네상스의 맹아가 튼 거죠. 이 시기 우르에서는 우르 제3왕조가 일어나 수메르 문명 최후의 부흥기를 열게 되는데요. 아카드의 멸망이 역설적으로 수메르 르네상스를 촉발한 셈이에요.

제국주의 문명의 유산

비록 단명했지만 아카드는 인류 역사에 제국주의의 원형을 남겼어요. 군사력을 앞세운 무차별 정복, 중앙집권적 통치, 약탈과 수탈로 굴려진 피정복민들. 이는 훗날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이 계승할 패턴이 되었죠.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로 계승된 전통

아카드의 멸망 이후 메소포타미아 무대의 주인공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로 넘어갑니다. 이들은 아카드식 제국주의를 고스란히 계승했는데요. 무력 정복과 속국 통치, 대규모 공공사업과 조세 수취 등에서 아카드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졌어요.

문명사적 의의와 유산

최초의 세계제국

아카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으로 기록됩니다. 광활한 영토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로 지배한 대제국의 효시였던 거죠. 제국주의 문명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패권자

아카드는 메소포타미아는 물론 서아시아 전역을 호령한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패권자였어요. 특히 길가메시 대왕 이래 1000년 넘게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수메르를 제압했다는 건 대단한 성과였죠. 아카드 제국은 그야말로 시대의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이었던 셈이에요.

문자와 문화의 전파자

무력 팽창의 이면에 아카드는 선진 문명의 전파에도 기여했어요. 정복 활동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주변으로 확산된 것이죠. 수메르의 쐐기문자와 문학, 학문이 바빌로니아와 헷타이트에 전해진 것도 아카드 덕분이에요.

아카드어의 공용어화

특히 아카드어가 서아시아 세계의 공용어로 자리 잡게 된 건 주목할 만해요. 아카드가 정복한 지역에서는 아카드어가 행정과 무역, 외교의 표준어가 되었거든요. 문화의 동질화로 제국 통치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선진 문물 전파의 토대를 닦은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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