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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수메르 역사 우루크기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4000년경 우바이드 시대를 거쳐 우루크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루크 시대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기원전 3100년경까지 이어진 수메르 문명의 전성기로 꼽히는데요. 우루크라는 도시국가에서 처음 발견되어 우루크 문화라고도 불리죠. 이 시기에는 수메르 문명을 상징하는 여러 문화적 성취들이 이뤄졌습니다. 문자의 발명, 왕정의 출현, 지구라트 건설 등 수메르 문명의 결정체라 할 만한 것들이 바로 우루크 시대에 태동했던 것이죠. 그럼 우루크 시대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우루크 시대의 구분

우루크 초기(기원전 4000년경 - 기원전 3600년경)

우루크 시대는 크게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뉩니다. 우루크 초기는 우바이드 문화에서 우루크 문화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우루크 초기에는 도시화가 한층 진전되면서 수메르 남부 전역에서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우루크 초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우루크 시 에아나 신전지구가 있습니다.

에아나 신전과 도시 국가의 맹아

에아나 신전 지구에서는 우루크 시의 수호신 아누와 여신 이난나를 모시는 신전들이 발견되었어요. 흥미로운 건 에아나 신전 주변으로 대규모 창고군과 관저 지구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신전이 도시국가 운영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에아나 신전은 제의 공간인 동시에 도시 행정의 중심이었던 셈이에요.

우루크 중기(기원전 3600년경 - 기원전 3400년경)

우루크 중기에 이르면 우루크 문화가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우루크 중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인구 증가와 사회 분화, 도시화의 급진전이었어요. 우루크 시의 인구는 3만 명에서 5만 명 수준으로 불어났고, 다양한 계층과 직업이 분화되었죠. 우루크 중기의 유적으로는 우루크 시의 시대 4-5기층이 대표적이에요.

우루크 시의 번영과 사회 분화

우루크 시대 4-5기층에서는 대규모 주거지와 수공업 공방, 창고, 관청 등이 발견되었는데요. 각종 문서와 인장, 저울추 등의 유물을 통해 당시 우루크가 상업과 무역으로 번성했음을 알 수 있어요. 한편 신전 인근에서는 호화로운 무덤도 발견되는데, 이는 계급 분화가 상당히 진전되었음을 시사하죠.

우루크 후기(기원전 3400년경 - 기원전 3100년경)

우루크 후기는 우루크 문화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였어요. 쐐기 문자가 발명되고 수메르 문학의 효시인 『길가메시 서사시』가 탄생한 것도 이때였죠. 한편으로는 계급 분화가 심화되고 전쟁이 잦아지면서 우루크 문화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어요. 우루크 후기의 대표 유적으로는 우루크 시 이난나 신전, 에리두 마을 등이 있습니다.

쐐기 문자의 발명과 서사시 문학의 탄생

우루크 후기, 이난나 신전 주변에서는 점토판에 쐐기 문자가 쓰인 행정 문서들이 발견되었죠. 농산물 분배나 세금 징수 같은 행정 업무를 위해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거예요. 문자의 발명은 지적 활동을 자극하여 수메르 문학이 꽃피는 토대가 되었어요. 영웅 길가메시의 모험을 다룬『길가메시 서사시』도 이때 처음으로 구전되기 시작했답니다.

우루크 시대의 사회와 문화

신전 도시의 출현과 도시 혁명

우루크 시대 도시들은 모두 대규모 신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어요. 도시 국가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은 제의 공간일 뿐 아니라, 도시 행정과 경제의 중추이기도 했죠. 신전 주변에는 창고와 관청, 수공업 공방, 시장 등이 발달했고, 도시의 지도자들은 대개 신관 계급 출신이었어요. 신전을 축으로 돌아가는 이런 도시 체계를 일러 신전 도시라 부른답니다.

지구라트의 건설과 의의

우루크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지구라트예요. 지구라트는 네모난 단을 여러 겹 쌓아 만든 신전인데, 꼭대기에는 수호신을 모시는 제단을 두었죠. 종교적 의미 외에도 지구라트는 도시의 상징물이자 과시물이기도 했어요. 50m가 넘는 높이의 웅장한 지구라트를 보고 있노라면, 당시 도시국가들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죠.

수공업의 전문화와 장거리 무역의 발달

우루크 시대에는 수공업이 더욱 발달하고 전문화되었어요. 토기, 금속 세공, 직물 등 각종 수공업 제품이 전문 장인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었죠. 이는 상품 생산과 교역의 활성화로 이어졌답니다. 우루크의 인장과 토기가 서아시아 곳곳에서 출토되는 걸 보면, 당시 우루크가 광역 무역망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어요.

무역과 분업의 발달

우루크는 무역을 통해 각종 자원과 사치품을 수입했어요. 오만에서는 구리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청금석을 들여왔죠. 바빌론에서는 목재와 역청을, 페르시아만 연안에서는 진주를 수입했다고 해요. 무역이 발달하면서 상인이나 외교관 같은 전문직도 등장했어요. 특화된 지역 간 분업이 이뤄지면서 우루크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졌답니다.

왕정의 출현과 전쟁의 빈발

우루크 시대 후기에는 도시 국가를 통치하는 왕이 출현하게 됩니다. 제정일치의 신관 지배체제에서 점차 왕이 행정과 군사 권력을 장악해 간 것이죠. 초기에는 도시의 수호신을 대신해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리자 역할이었지만, 나중에는 신의 아들을 자처하며 세습 군주로 군림하게 되었어요.

도시 국가 간 전쟁과 우루크 문화의 쇠퇴

수메르 남부에서는 우루크뿐 아니라 에리두, 우르, 라가시 같은 도시국가들도 발달했는데요. 이들은 영토와 자원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전쟁은 일상이 되어 갔죠. 우루크 후기에 이르면 성벽과 무기가 발달하고 전쟁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많아지는데, 이는 전쟁이 빈번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에요. 전쟁의 와중에 우루크 문화는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답니다.

우루크 시대의 종교와 예술

이난나 여신 숭배의 발달

우루크 시의 수호신으로 숭배된 건 하늘의 신 아누와 그의 딸 이난나였어요. 특히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난나는 우루크 시대 최고의 인기 신이었죠. 그녀를 모시는 이난나 신전에는 숱한 제물과 헌물이 바쳐졌고, 성대한 제의도 열렸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이난나는 길가메시의 연인으로 등장하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이난나 여신상의 예술성

우루크 시대의 예술작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이난나 여신상들이에요. 나체의 여인이 두 손으로 가슴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한 조각미가 인상적이죠. 신전 입구를 장식한 이난나상들은 풍요와 다산의 기원이기도 했지만, 예술적 감흥 자체로도 충분히 감상할 만한 걸작들이랍니다.

인장의 발달과 회화의 맹아

우루크 시대에는 원통 모양의 인장도 유행했어요. 쐐기 문자로 소유주의 이름을 새기고 그 주위에 각종 신화적 장면을 조각한 거죠. 우루크 문화권 곳곳에서 출토되는 인장들은 당시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예요. 한편 신전 벽화에서는 회화의 맹아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신전 행렬도나 전쟁 장면을 소박하지만 생생하게 묘사한 것들이 눈에 띕니다.

모자이크 장식의 화려함

우루크 시대 신전 장식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화려한 모자이크예요. 유리 않은 콘과 색색의 점토를 짜 맞춰 기하학 문양을 만든 건데, 건축 외장재로서의 모자이크 기법이 이때 처음 선보인 거죠. 이런 모자이크 장식은 메소포타미아 건축의 새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아요.

우루크 문화의 영향과 현대적 의의

수메르 문명으로 계승된 유산들

우루크 문화는 수메르 문명의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문화예요. 문자의 발명, 서사시 문학의 탄생, 도시와 국가의 출현 등 우루크 시대의 문화적 성취들은 이후 수메르 문명의 핵심 요소가 되었죠. 우르 제3왕조나 바빌로니아 등 후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우루크 문화의 유산을 계승했답니다.

문자 문명의 효시

우리가 문자 문명의 시작을 수메르에서 찾는 이유, 우루크 시대 덕분이에요. 쐐기문자의 발명으로 수메르는 문자 문명의 효시가 되었죠. 특히 우루크에서 탄생한 서사시 문학은 그 자체로 인류 최초의 문학 장르가 되었어요. 오늘날 작가들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영감을 얻곤 하죠.